꿈을 가지라는 말에 반항심이 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어른들의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게 쓸모없었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일 것이다.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게 되면서, ‘꿈을 가지라’는 말속의 ‘꿈’은 듣는 이가 아닌 말 하는 이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꿈과 장래 희망(직업)을 같은 것이라고 여기도록 가르침 받았다. ‘여러분의 꿈을 그려보세요’ 같은 학습지에 슈퍼 히어로나 행복한 가족을 그려서 내는 아이는 없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듯이 특정 직업군을 그려 내야 했다. 또,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장래 희망을 적어서 내야 했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다’보다는 ‘화가’나 ‘만화작가’ 같이 명백한 것을 쓰는 게 바르다고 배웠다. 머릿속엔 무의식중에 ‘꿈은 직업’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1년마다 학교 책자를 냈는데, 아이들의 이름 옆에 ‘커서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을 적는 것이 정해진 양식이었다. 지금 다시 보면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들까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특정 직업군과 그 직업군에 관련된 일을 적어냈다.
머리가 좀 자라 중학생 정도가 되어선 ‘꿈=직업’의 공식에 의문을 품었다. 책을 읽거나 강연 따위를 두어 개만 찾아봐도 꿈과 직업은 같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장래 희망이 아닌 꿈을 찾아보자니 없는 것 같았다. 성공 신화만 비춰주는 미디어에서 가져오는 꿈들은 ‘노벨상 수상’이나 ‘에베레스트산 등산’ 따위의 멀고 원대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면 또 ‘좋아하는 것을 좇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여겨진다. ‘좋아하는 것을 좇다 보면 꿈과 직업은 뒤따라온다’고 영상 속 사람들은 말했다. 왜 결국 우리는 꿈과 직업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학교엔 ‘진로’ 과목이 있다. 내가 다닌 학교의 진로 선생은 서비스직을 소개할 때마다 ‘수입이 적으니 고려해봐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언젠가 방과 후에 남아 “수입으로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을 삼가시면 안 되겠냐”고 물었고 진로 선생은 답했다. “진로를 가르치는데 수입을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진로 시간은 우리에게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르쳐주는 시간이구나.
진로 선생은 이후로도 돈을 잘 버는 상위층 직업과 돈을 못 버는 하위층 직업을 나누어 이야기했다. 이상했다, 내 주변의 중산층 어른들은 죄다 하위층 직업을 가졌는데 잘만 살고 있었다. 결국 ‘돈 잘 버는 직업’을 꿈으로 삼는 것은 우리 부모 세대의 욕심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구하게 그랬을 것이다.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생긴 이래로 자식을 부모의 소유로 여기는 한국 문화권은 본인(부모)이 맛보지 못한 신분 상승을 자식으로 이루기 위해 발버둥 쳤을 것이다. 그러니 직업을 갖는 것이 곧 꿈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들은 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진솔하게 느껴졌던 꿈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정 성별 남성인 그는 치마를 입거나 머리를 기르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되기 위해 여성이 되길 꿈꿨다. 그것도 그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기에 겨우 들은 말이었지, 그는 말했다. “네가 친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말하지 못했을 거야.”라고. 그는 그 꿈을 진심으로 간절히 바랐는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꿈은 때로 사회 분위기에 따라 묵인해야 할 것이 된다. 그는 꿈을 말하려면 본인이 속한 사회의 분위기와 구성원의 사상을 판단해야 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꿈의 범위를 재단한다고.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꿈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깨달은 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그래서 사랑받는 것)’이었고 중학교 때는 ‘글을 쓰며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꿈이라 말하는 순간 어른들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고 ‘이런 건 꿈이라 할 수 없나 보다’하고 움츠리곤 했다.
나는 어떤 꿈이든 지지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현 사회는 암묵적으로 ‘직업과 관련된 원대한 꿈을 가지라’, ‘그래서 성공하고 행복해지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회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진 꿈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한다.’ 꿈이란 옳다 그르다의 양분이 아닌 스펙트럼이니까. 모두가 모여 자유롭게 진솔한 꿈을 말하는 미래를 생각한다. 지금 나의 꿈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828 구구
진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으로 다가와요.....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