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한다. 그중 ‘식(食)’은 심지어 동식물에도 적용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은 食, 즉 문학 속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식들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첫 번째 음식은 ‘석류’이다. 오래 전 한 음료 광고에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한다’는 구절을 사용했을 정도로 석류는 미녀의 과일, 여자의 과일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아름답고 매혹적인 석류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시작은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 옛날, 제우스와 곡물의 신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포네가 있었다. 그런데 저승의 신 하데스가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를 납치하고 만다. 데메테르는 딸을 찾느라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게 되어 대지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보다 못한 제우스가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지만,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음식을 먹은 바람에 완전히 이승으로 돌아올 수는 없게 된다. 이것은 아무리 제우스라도 어길 수 없는 법칙이었고, 결국 페르세포네는 정해진 기간에만 이승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이때 페르세포네가 먹은 저승의 음식이 바로 ‘석류’이다. 그리고 이 석류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처음 심었다는 설화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석류는 여자의 과일보다는 ‘신비한 과일’에 더 가까운 이미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아프로디테의 과일, 또는 페르세포네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먹은 매혹적인 과일 같은 이미지가 굳어져 현재의 석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문학은 어떤 대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의미를 굳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사회 속에서 굳어진 의미를 문학 속에서 사용한 예를 보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예시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있다. 이 작품 속에서는 김 첨지와 병든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 김 첨지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사람들을 태운 인력거를 끌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날따라 벌이가 좋았지만, 속에서는 집에 누워있는 병든 아내가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다. 그 마음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김 첨지는 모처럼 친구와 술까지 마시고 밤늦게 집에 돌아간다. 그의 손에는 며칠 전부터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설렁탕’이 들려 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죽었고, 김 첨지는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냐며 울부짖는다.
이 작품이 쓰인 1920년대에서 설렁탕은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이었다. 그런데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층민이었던 김 첨지의 가족은 설렁탕조차 사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설렁탕이 상류층의 음식이었다면 이 작품의 감동이 그대로였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벌이가 좋으면 먹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을 설렁탕을 겨우 사 가서 아내에게 주려는 김 첨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슬픔과 감동을 느낀다. 터무니없는 값의 음식을 샀다면 물론 감동적이었겠지만, 몰입과 감동은 지금보다 줄어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이미 의미가 부여된 대상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독자에게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816 엄상운
설렁탕 은 한국의 음식??? 먹어보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