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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된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은 오래도록 인간에게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도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미지에 대한 공포심이 발동하는 것이겠지요. 사후세계를 알 수 없기에 사람들은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해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단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한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미지를 두려워하는 특성이 있는데, 상상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구체화하면 알 수 없음에 대한 공포감을 덜어낼 수 있으니까요. 또 사후세계를 통해 영생의 삶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드러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내세관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을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각자의 내세관을 어떻게 구현해 냈을까요?



먼저 피라미드와 미라를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이집트의 유명한 문명이지요. 폐쇄적 지형으로 인해 이집트인들은 외부의 침략을 받을 걱정이 별로 없었습니다. 현재의 삶은 이미 안정되어 있으니 죽음에 대해 생각했겠지요. 따라서 이집트는 사후세계를 매우 중요시했고, 미라를 만들거나 피라미드를 만드는 등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집트의 내세관을 보면, 오시리스, 호루스, 도트, 아누비스, 아뮤트 등의 신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죽은 자를 재판합니다. 죽은 이의 심장 무게를 재어 무거우면 죄가 많다고 여겨 아뮤트에게 심장을 먹히는 등의 방식이지요. 사후세계에 대해 계속해서 상상하면서 내세에도 나름의 법규가 생기게 된 겁니다. 이 법규는 현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그들이 삶을 바르고 착하게 살도록 유도합니다.


다음으로는 신라 경덕왕 때 지어진 제망매가를 볼까요? 월명사의 제망매가는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내용의 향가인데요, 이 노래에는 불교적 내세관이 드러나 있습니다. 마지막 행인 ‘아으 미타찰에서 만날 내 도 닦아 기다리리다’라는 구절을 보면 종교에의 귀의를 통해 누이의 죽음에 의한 허무감을 불교적으로 승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미타찰은 화자가 누이를 만날 것을 희망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화자는 미타찰에 가기 위해 도를 닦아야 한다고 믿고 있죠. 즉 이 시에서 내세관은 화자의 허무감을 덜어내는 동시에 화자의 불교적 수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세관의 흐름은 바리데기 설화에서도 나타납니다. 바리데기는 죽은 부모를 살리고, 더 나아가 죽은 영혼들의 신이 되지요.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바리데기’ 설화에 등장하는 버림받은 공주 ‘바리데기’는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에서 주인공 ‘바리’로 재탄생합니다. 설화에서 바리데기가 죽은 부모를 신비한 꽃으로 살리는 이야기는 소설에서 주인공 바리가 꿈속에서 지옥을 지나가는 장면으로 구현됩니다. 일하다가 맞아 죽거나 아사한 사람들, 난민들이 괴로워하면서 고통의 이유를 묻고, 바리가 꽃을 꺾어 돌아오는 길에 그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지요.




단테의 ‘신곡’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신곡’은 주인공이 지옥, 연옥, 지상의 낙원을 거쳐 천국까지 갔다가 신의 사랑을 본 후 지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서사시인데요, ‘신곡’ 속의 내세는 그것이 현존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우 세밀하고 생생하게 짜여 있습니다. 제1원부터 제7원까지 죄의 경중에 따라 철저하게 분류된 지옥은 특히나 죽은 이들이 받는 형벌을 끔찍하게 묘사해, 보는 이로 하여금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마지막으로 디즈니의 영화 ‘코코’인데요, ‘코코’는 멕시코의 전통인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 삼아 주인공 미구엘의 사후세계 여정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지요. 특히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지상 세계에 남아 있지 않으면 사라지게 된다는 멕시코의 내세관을 잘 활용한 점이 특징입니다. 현대로 올수록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존재를 잘 끝맺는 과정이라고 보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화 ‘코코’도 탄생한 것이겠지요. 특히 ‘코코’ 속에서는 죽은 이들이 괴기하거나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인간적이고 정감 가는 대상으로 표현되어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인간은 단순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상상하며 내세관을 확립해 왔습니다. 더 나아가 이를 예술로까지 승화시키지요. 고대나 중세에는 주로 종교에 의한 사후세계의 인식을 바탕으로 정형화된 가치관을 담은 예술이 탄생했다면, 후대로 갈수록 집단적, 종교적 내세관보다는 개인의 독창적 상상력을 담은 내세관이 두드러지면서 더욱 다채로운 예술작품이 탄생합니다. 이처럼 공포는 인간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상력을 펼치고 예술작품까지 만들어내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내세관을 바탕으로 한 예술작품이 등장할까요? 또 인간이 생각하는 사후세계는 어디까지 나아가게 될까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인간에게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집니다.




 

w. 2817 유하나



1 ความคิดเห็น


Junko
30 ต.ค. 2563

面白いコラムは読みました。 学生の見解が印象深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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