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은 핵전쟁 중에 비행기가 격추되어 무인도에 갇힌 영국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랠프, 잭, 사이먼, 로저 등이 있다. 처음에 소년들은 랠프를 대장으로 뽑고, 규칙을 하나씩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봉화를 관리해야 한다는 랠프와 사냥을 중요시하는 잭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무리는 크게 둘로 나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이먼은 죽임을 당하고, 랠프마저 잭 무리에게 쫓기게 된다. 랠프가 잭의 무리로부터 죽임을 당하기 직전, 영국 해군 장교가 소년들을 구조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소설은 무인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년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극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파리대왕> 속 아이들은 두 무리로 나누어지게 된다. ‘사냥’을 택한 무리는 구조되기 위한 준비보다 사냥감을 잡는 그 순간의 쾌락을 더 중요시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도 두려움을 느낀다. 사냥 무리의 대장인 잭은 그러한 두려움을 덮기 위해 ‘의식’을 활용한다.
‘로버트가 랠프에게다 멧돼지인 양 으르렁거렸다. 랠프도 장난을 받아 로버트를 찌르는 시늉을 해서 웃었다. 곧 그들은 덤벼드는 시늉을 하는 로버트를 마구 찌르는 체하였다. 잭이 소리쳤다. “에워싸!” 둘러선 몰이꾼들이 원을 좁혔다. 로버트는 공포에 질린 시늉을 하며 비명을 지르다가 나중엔 정말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멧돼지인 척 달려들면, 나머지 사람들은 ‘돼지를 죽여라! 목을 따라! 돼지를 죽여라! 때려잡아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멧돼지 역할의 아이를 원으로 둘러싼다. 그리고 창칼을 휘두른다. 이러한 행위는 잭의 무리가 사냥에 실패했을 때, 단순한 ‘놀이’로써 행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괴한 놀이는 ‘잭’의 무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나중에는 불, 북소리, 소년들의 함성이 추가되는데, 이는 의식을 (겉으로 보기에) 웅장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의식은 잭의 무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의식을 통해 무리의 사기가 점점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식은 소년들에게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용기를 불어넣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굵은 빗발에 천둥까지 치던 어느 날, 소년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안해한다. 이를 본 잭은 자신의 무리에게 멧돼지를 배불리 먹이고, 여느 때처럼 의식을 시작한다. 흥겨운 음악, 반복되는 동작은 소년들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와 합쳐져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번갯불이 내리쳤을 때, 한 꼬마가 큰 소년들이 그리고 있는 원에 부딪힌다. 흥분한 소년들은 그 꼬마(사이먼)를 ‘짐승’이라 부르며 새로운 원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 ‘짐승’을 막대기로 내리치다가 이빨과 손톱으로 물어뜯고 할퀸다. 이렇듯 이 의식은 한 소년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잭을 포함한 소년들은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명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었다. 그랬던 소년들이 어떻게 한 소년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을까? 잭의 무리에서 행해졌던 의식은 소년들의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주었을까? 나는 소설 속 의식이 소년들의 두려움을 살짝 덮어주기만 했을 뿐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의식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착각’과 여전히 남아 있는 ‘두려움’은 뒤엉키면서 커다란 힘을 얻게 된다. 그러한 힘으로 인해 잭의 무리는 한 소년을 무참하게 죽였을지도 모른다.
<파리대왕> 속 의식은 독특하고 기괴하지만, 불안함을 조금이나 없애기 위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재의 의식들과 닮아있다. <파리 대왕>을 통해 의식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또한, ‘의식’이라는 소재가 문학작품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
W.2835 허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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