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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 중 창조 신화에 대한 고찰 : 〈창세가〉와 불교적 관점 중심으로.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신화를 접하며 살아간다. 가령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으며 교리 내용을 제외한 성경의 이야기,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와 이집트 신화, 심지어는 이즈텍 신화나 일본, 중국, 인도 신화까지 아는 사람을 가끔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쉽게 접하는 한국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창조 신화, 혹은 신화 자체를 골라 보자면 너무나 모순적이게도 ‘한국 신화’라고 할 수 있다.


Jupiter and Thetis, Jean A.D Ingres


대중적으로 알려진 한국 신화는 보통 짧은 건국 신화나 시조 신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기록된 신화가 건국 신화에 한정되는 한계에서 비롯되는데, 정확한 사료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건국 신화는 고대 국가의 성립과 연관이 있어 학습의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한국은 고대 국가 때부터 삼국으로 분리되어 성장했고, 문자의 발달이 늦어 기록물을 만들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삼국 시대부터 국교가 불교였던 점과 고려 시대가 되어서야 신화를 기록한 첫 서적 「삼국유사」의 편찬마저 기술 목적보단 정치적 의도가 강했던 것으로 보아 한국 신화의 발전은 애당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사료로 남아 있지는 않으나 구전, 혹은 무속을 통해 전해진 신화는 상당수 존재하고, 현대의 학자들은 이를 열심히 수집하고 있다. 한국 신화는 현대에 들어서야 주목받고 있으며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다. 그중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바로 한국의 ‘창조 신화’이다.


삼국유사, ⓒ문화재청


일단 우리는 창조 신화의 정확한 뜻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위키백과에서는 ‘인류, 지구, 생명, 우주 등의 시초에 대한 초자연적, 신화적, 종교적인 이야기’로 정의 내리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세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의 창조 신화에는 여러 전승이 있으나 오랜 시간 불교와 함께 발전해왔던 만큼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수록된 〈창세가〉를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세계가 하나로 혼잡하게 뭉쳐있던 시절, 태초의 신인 미륵(불교의 그 미륵보살이 맞다.)이 태어났다. 그는 세상을 하늘과 땅으로 분리하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도록 땅의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워 하늘을 지탱했다. 시간이 흐르자 땅에는 식물이 자라나고 자연히 작고 큰 짐승들이 들판을 뛰놀기 시작했다. (이때 미륵이 불과 물의 근원을 찾고 의복을 마련하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뛰어넘도록 하겠다.) 어느 정도 세상이 안정되자 미륵은 자신과 닮은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금쟁반과 은쟁반을 각각 손에 든 미륵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자 하늘에서 다섯의 금벌레와 다섯의 은벌레가 각각의 쟁반 위로 떨어졌다. 금벌레는 자라 사내가 되고 은벌레는 자라 여자가 되니 미륵은 사내와 여자가 연을 맺게 하니 이 다섯의 부부가 낳은 아이들로 인간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창세가〉는 흥미로운 요소를 다수 겸하고 있는데, 가장 처음 짚어볼 것은 혼돈한 세계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아예 카오스Chaos라는 단어를 사용해 세계의 이전을 설명하고 성경 또한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 이전에는 땅과 하늘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미루어보아 한국의 신화 역시 세계의 탄생에는 비슷한 전개를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미륵이라는 불교의 신을 등장시키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역시나 불교의 수용이 빨랐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창세가〉에 한정된 이야기로 구전 신화 중에는 미륵이 아닌 어느 거인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전승도 존재하며, 이에 따르면 인간은 벌레가 아닌 금구슬과 은구슬에서 태어났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가보자. 〈창세가〉와 비슷한 전개를 띄고 있으나 조금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야기가 있어 이번에는 불교적 관점이 아닌 민간신앙에서의 전승을 하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대별왕과 소별왕〉과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는 하늘에 해와 달이 하나가 아닌 두 개씩 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낮은 찌듯이 더워 곡식이 자라지 못하고 밤에는 차가운 칼바람이 불 정도로 추워 곡식이 자라지 못하니 하늘의 왕인 천지왕의 근심이 컸다. 어느 날 천지왕은 꿈에서 두 용이 해와 달을 하나씩 집어삼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깨어나 필히 배필을 얻어 자식을 낳을 꿈이라 여기니 땅의 사람 중 가장 슬기롭고 어진 총명부인이란 여인과 혼인하게 된다. 한동안 이들은 행복한 생활을 즐기나 본디 하늘의 사람인 천지왕은 더 이상 땅에 머물 수 없었다. 결국 하늘로 돌아간 천지왕은 총명부인에게 자식이 둘 태어날 것이니 첫째는 대별왕, 둘째는 소별왕이라 이름 붙이되 이들이 아비를 찾는다면 이것을 심으라 하며 두 개의 박씨를 전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명부인은 그의 말대로 쌍둥이 아들을 낳으니 이들이 대별왕과 소별왕이었다.


어릴 때부터 힘과 슬기가 뛰어났던 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아버지를 찾겠다며 박씨를 심었다. 씨를 심자 순식간에 줄기가 하늘까지 자라나고 이 줄기를 타고 올라간 대별왕과 소별왕은 아버지인 천지왕에게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떨어뜨리란 임무를 하사받았다. 거대한 활과 화살로 대별왕이 해를 쏘니 부서진 해는 동쪽으로 날아가 샛별이 되고 소별왕이 달을 쏘니 부서진 달은 서쪽 하늘로 날아가 초저녁의 개밥바라기가 되었다고 한다. 해와 달이 하나씩 남아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천지왕은 크게 기뻐하며 대별왕에겐 이승을, 소별왕에겐 저승을 맡겼다. 그러나 어두운 저승을 다스리던 소별왕은 생명이 있는 이승을 다스리는 대별왕에게 질투를 하니, 이승을 다스릴 권한을 두고 형에게 내기를 하나 제안한다. 그 내용은 은그릇에 씨를 심고 하룻밤 동안 머리맡에 두었을 때 둘 중 꽃을 무성하게 피워낸 쪽이 이긴다는 것이었다. 대별왕은 이 내기에 승낙하고 함께 잠을 자기로 한다. 그러나 밤중에 깨어난 소별왕이 보니 자신의 꽃은 시들어버리고 대별왕의 꽃은 무성하게 자라난 상태였다. 이때 소별왕이 몰래 둘의 그릇을 바꿔버리니 다음날 일어난 대별왕은 순순히 이승을 소별왕에게 넘겨주었다. 그리하여 거짓으로 자리를 꿰찬 소별왕이 이승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니 교활한 인간들이 넘쳐나나, 공정한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에 가면 합당한 벌을 받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대별왕 소별왕, 한태희


〈창세가〉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때의 등장인물은 미륵과 석가로 불교적 색채가 더욱 짙게 나타난다. 반면 새롭게 창조된 인물이 등장하는 〈대별왕과 소별왕〉 신화에서는 한국의 민간신앙이 크게 드러나며 부조리한 이승과 합당한 저승이라는 한국의 세계관을 알아볼 수 있었다. 둘의 창작 연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어느 이야기가 원본에서 파생되었는지 확인할 방도는 없으나 한국의 세계관은 대체로 올바르지 않은 지도자가 이승을 맡아 문제가 생기는 것에 반해 올바른 지도자가 있는 저승은 이상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오늘은 한국의 창조 신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외에도 제주의 창조 신화, 바리데기 공주나 다양한 괴물에 대한 전승이 많으나 이 자리에서 전부 소개할 수 없는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한국의 신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신동흔 저자의 〈살아있는 한국 신화〉란 도서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중국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화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길 바란다.




 

w. 2824 이해솔


1件のコメント


라마
라마
2020年10月30日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화에 대해 알게 돼서 흥미로웠어요!

한국의 신화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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