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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란.


 



'축제’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대개 화려한 춤사위와 신나는 노래, 맛있는 음식이 어우러지고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지는 장면을 생각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축제 카니발, 토마토 축제 등의 사진을 보아도 즐겁고 격정적인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축제에 관련된 정보를 찾으면, 온통 화려하고 즐거워 보입니다. 울거나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의 사진은 잘 찾아볼 수 없죠. 그렇다면 축제는 즐겁기만 한 것일까요?


이에 대해 답하기에 앞서 축제는 어떻게 생긴 것일지 생각해 봅시다. 축제는 무언가를 기원, 기념, 기억하고, 나아가 소통하는 매개체로서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해왔습니다. 즉, 풍요를 기원하거나 재해를 막는 등의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시작해 오늘날 축제의 형태로까지 이어졌을 거예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의식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느냐입니다.


예전의 축제를 떠올려 봅시다. 잉카 문명의 축제, 또는 어떤 부족의 축제를요. 오래전 축제의 시초에는 늘 등장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물’이지요. 때로는 사람이 제물이 되고, 때로는 동물이 제물로 쓰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물이 대부분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이 제물을 바친 이유였겠지요.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늘 누군가는 희생당해야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의식은 매우 잔인하게 치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종교라는 명분 속에서 깊숙이 자리 잡았지요. 카니발의 원래 뜻도 식인이었으니까요. 더 나아가 의식과 축제의 시초에는 늘 제물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수의 행복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소수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교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등 돌리곤 했습니다. 오늘날, 제물을 바치는 문화는 거의 사라졌지요. 인권의식이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종교적 신보다는 인간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으니까요.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다수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는 소수를 볼 수 있습니다.


어슐러 르 귄의 유명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오멜라스 사람들은 매일 축제 같은 삶을 즐깁니다. 거리는 오색찬란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곳이죠. 그러나 오멜라스의 지하에는 한 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잘 먹지 못해 뼈가 앙상하고 배만 불룩 나온 정신 박약아가요. 오멜라스의 행복은 이 아이의 불행으로 인한 것이었던 겁니다. 이 소설은 다수의 행복을 위해 묵인되고 강요되는 소수의 희생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도 작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점들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너무나 편안하게 거리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 어떤 사람은 휠체어를 탄 채로 어쩔 줄 몰라 할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에게 축제처럼 즐거운 시간인 연극 관람도 누군가는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워할지 모릅니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은 주차된 차들에 시야가 가려 앞으로 차가 오는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축제의 들뜬 분위기에 취해 제물의 눈물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편리함에 가려진 약자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앞만 보지 말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뒤에서 목발을 짚은 채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꺼질까 급히 움직이는 사람을, 키가 작아 차들이 오는 것을 잘 보지 못하는 아이를 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게 된다면, 축제의 제물은 차차 사라질 거예요. 소수의 아픔에도 귀 기울인다면, 우리의 삶은 축제보다 아름답고 뜻깊은 것들로 가득 차지 않을까요?



 

W. 2817 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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